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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 라이징 감상


(마님의 글입니다.)


출간 전부터 헝거 게임과 많은 비교를 받은 레드 라이징을 읽었다. 계급 간의 위계질서가 철저하고 폭력적으로 지켜지는 것과, 아이들이 살아남기 위해 전투를 벌인다는 점에서는 비슷하지만 물론 여러 면에서 다르다. 장르문학을 많이 읽지 않는 사람에게 굳이 설명한다면 헝거 게임은 어딘가에서 있을 법한 상상의 세계를 그린 판타지고, 레드 라이징은 미래에 있을 법한 SF적 세계관을 그린다. 그러나 헝거 게임의 주인공은 자신이 결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영웅으로 떠받들려지는 쪽에 가깝다면 레드 라이징의 주인공은 영웅 탄생 설화의 공식을 충실하게 따르는 편이다. 그래서 비교하면서 읽는 재미가 있기도 하고, 아류작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싶은 불안감을 깨뜨리는 작가의 필력에 감탄하기도 하게 된다.

작가의 필력이란 매끄럽게 읽을 수 있으면서도 책장을 넘기는 속도를 늦출 수 없다는 점에서 경력이 쌓일 수록 진가를 발휘하게 되는데, 레드 라이징은 이 작가의 데뷔작이라고 한다. 물론 습작이 많았겠지만, 데뷔작임을 확인하고서는 과연 재능이란 타고난 것이구나 하는 감탄을 금치 못하게 된다. 주인공의 평범한 일상과 억눌려있던 삶을 건조하게 묘사하면서 독자의 감정선을 조금씩 이끌어가고, 현 세계에 없는 물건과 제도를 바로바로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면서 자연스럽게 세계관에 젖어들게 한다. 주인공의 감정을 이해하고 상황을 납득하게 되면서 독자는 주인공을 응원하고 안타깝게 여기고 행복해지길 바라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진짜 묘사는 청소년기의 주인공의 성격과 생각을 생생하게 빚어내면서 진가를 발휘한다. 미션이 주어지고, 진짜 목표를 위해 남몰래 노력해야 하지만 눈앞의 사건에도 격정적으로 반응할 수 밖에 없는 주인공에게 철저하게 이입할 수 있다. 동시에 정치와 전투의 본질에 대한 작가의 심도깊은 고찰이 곳곳에서 드러난다. 같은 사건을 겪으면서 주인공의 선택이 점점 발전하게 되는 사고의 발전을 독자도 함께 경험하게 되는 듯 하다. 목표를 잃지 않고 가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중요한지, 주인공을 응원하면서 함께 함정에 빠질 뻔한 독자를 일깨워주는 듯한 힘이 살아있는 작품이다.

주인공의 행적을 샅샅이 묘사하면서도 지루할 수 있는 부분은 슬쩍 생략하고, 심리를 묘사할 때는 인물들의 성격에 근거해 납득할 수 있는 합리적인 결과물을 보여준다. 그야말로 스피디한 진행 속에서도 디테일이 살아있는 멋진 솜씨라는 찬탄을 낼 수 밖에 없었다.

책의 중반을 넘어가기 시작하면서는 이토록 거대한 이야기가 제대로 끝을 낼 수 있을까 걱정하면서 읽었고, 마지막 장을 덮을 무렵에는 후속작이 있을 거라는 기쁨으로 만족할 수 있었다. 단 한가지 우려가 있다면, SF 장르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라면 선입관을 갖고 읽지 않을 것 같다는 정도? 이 책은 청소년의 성장 드라마이고, 정치와 계급 사회에 대한 고찰이 빛나는 소설이고, 무엇보다도 정말 재미있는 이야기이다. 아무 생각없이 빠져들 수 있는 재미 거리를 찾는다면 이 책을 꼭 읽어보시길. 그리고 후속작이 빨리 나오길!

by 사보텐 | 2015/12/10 13:57 | 대중문화(기타)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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